114 韓国における砧の解説

 

韓国では砧がどのように論じられているか、ちょっと調べてみました。

 

@   韓国の百科事典の解説を翻訳したものです。砧打ちの目的や工程、二種類の砧とその使い分けなどが記されており、内容的には正確です。日本の砧の解説では砧の目的を「柔らかくする」と間違って書かれる場合が多いのですが、韓国の百科事典ではさすがにそれはありません。翻訳文は薄赤で表示します。

 

砧打ち(다듬이질

  布地の皺を伸ばし、艶を出すようにするために、横槌で何回も叩くこと

 

 砧(다듬이

 砧打다듬이질ともいう布地を砧石の上に置いて砧槌で叩くやり方と、綾巻に巻いてから台に固定して横槌で叩き、綾巻が回りながら均等に仕上がっていくやり方とがある。砧打ちでよく仕上がった布地は、アイロン掛けしたものよりも滑らかで、皺もなくなる。

 

 砧打ちをしようとすれば、まず糊付けした洗濯物を一旦完全に乾かす。このようにすると糊がきいて、布目がよく伸びるのである。次に水で濡らすのだが、水を少しずつ手につけて均等に撒いたり、水を口に含んで霧吹きする。水で濡らした洗濯物は、ざっと折りたたんで風呂敷に包み、水気が均等に広がるようにしばらく待った後、縫い目に合わせて再び折りたたむ。布団カバーのような大きな洗濯物は、二人が向かい合わせで引っ張り合い、布目を伸ばしながら適当な大きさに折りたたむ。これを再び風呂敷に包み、床に置いて、しばらくの間その上から足で踏んでやると、温かみが洗濯物に広がって、皺もある程度伸びる。このようにしてからアイロン掛けとか砧打ちをするのだが、砧打ちの場合は風呂敷に包んだ洗濯物を砧石に置いて、一人が両手に横槌を持って叩いたり、二人が間に砧石を挟んで向かい合って座り、相互に砧打ちをする。ある程度叩いた後に、伸ばして折りたたむ間に洗濯物は艶が出て皺が伸び、糊気も均等に染み込む。

 

 明紬の洗濯物は綾巻で砧打ちするのだが、予め砧石で少し叩いて適当に乾かすと厚みがなくなって平らになり、これを綾巻に巻いてから台に固定して横槌で叩く。この時に叩く音は、砧石の上に置いて叩くよりも透明な響きで聞こえてくる。横槌や綾巻はすべて樺の木から作られるが、綾巻は普通7〜8pの丸太棒の表面をきれいに削り、使い慣らして滑らかにしたもので、中央が若干太く、両端にいくほど細くなる。

 

原典

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masterno=41559&contentno=41559

다듬이질

 옷감의 구김살을 펴고 반드럽게 하기 위하여 방망이로 두드리는 .

다듬이 ·다듬질이라고도 한다. 다듬잇감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다듬잇방망이로 두드리거나 홍두깨에 감은 다음 홍두깨틀에 의지하여 방망이로 두드리면 홍두깨가 돌면서 골고루 다듬어진다. 다듬어진 옷감은 다림질한 이상으로 매끈하고 구김도 지지 않는다.

다듬이질을 하려면 먼저 푸새를 세탁물을 일단 완전하게 말린다. 이렇게 하면 풀이 서고 올이 펴지기 때문이다. 다음에 물을 축이는데, 물을 손에 묻혀 조금씩 골고루 뿌리거나 물을 입으로 뿜는다. 물을 축인 빨래는 대강 접어서 빨랫보에 싸놓아 물기가 골고루 퍼지도록 잠시 기다린 후에 솔기 맞추어가며 다시 접는다. 홑이불과 같은 빨래는 2명이 맞잡고 잡아당겨 올을 펴면서 적당한 크기로 접는다. 이것을 다시 빨랫보에 싸서 바닥에 놓고 위에 올라서서 한참 동안 밟아주면 온기가 빨래에 고루 퍼지고 구김살도 어느 정도 펴진다. 이렇게 다음 다림질이나 다듬이질을 하는데, 다듬이질을 때는 보자기에 빨래를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1명이 양손에 방망이를 잡고 두드리거나, 다듬잇돌을 가운데 두고 2명이 마주 앉아서 맞다듬이질한다. 어느 정도 두드린 후에 펼쳤다 접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빨래는 윤기가 나고 구김이 펴지며 풀기도 골고루 스며든다.

명주 빨래는 홍두깨에 올려서 다듬이질하는데, 다듬잇돌에서 애벌다듬이를 하고 알맞게 마르면 너무 두껍지 않고 편편하게 홍두깨에 다음 홍두깨틀을 이용하여 방망이질한다. 이때는 다듬잇돌 위에 놓고 두드릴 때보다 투명한 음향이 들린다. 방망이나 홍두깨는 모두 박달나무 만드는데, 홍두깨는 보통 지름 78cm 나무막대기의 표면을 곱게 깎아 길을 들여 매끄럽게 것으로 가운데가 약간 굵고 양끝으로 갈수록 가늘다.

 

A    @のなかに「風呂敷に包んだ洗濯物」とあるところが、ちょっとイメージが湧かないと思われますので、参考のために下記のウェブサイト内の写真でよく分かります。

http://sagang.blog.seoul.co.kr/tag/%EB%8B%A4%EB%93%AC%EC%9D%B4

 

B    京畿大学校博物館の解説です。砧の種類とその使い分け、砧の目的などが比較的正確に説明されています。翻訳文は薄赤で表示します。

 

【遺物詳細情報】

遺物名称    木砧石(訳注―木製の砧石という意味と思われる)

国籍/時代   韓国 光復(1945)以後

材質      石(訳注―下記の詳細説明では木製なので、間違いと思われる)

大きさ     横:69.5cm/縦:17.5cm/高さ:13.5cm

用途機能    住生活用品 裁縫具 砧石

所蔵機関    学校/京畿大

遺物番号    京畿大268

詳細説明

 木砧石は木でできた砧石であるが、砧打ちをする時に服地を載せておく台の役割をする。砧打ちに使用される横槌を、料理に使う包丁に見立てると、砧石はまな板に相当する。即ち砧打ちをする時、砧石に服地を載せて横槌で打ち下ろすと、砧石と横槌がぶつかり合って、間に置いた服地の皺を伸ばすのである。

 別に言うと、砧打ちは洗濯した服地を横槌で叩いて仕上げる作業であって、漢字語では“棘砧”という(訳注―これは“搗砧”の間違いと思われる)。わが国の衣服は平面構成でできているところから、洗濯の際には針で縫ったところの縫い目をすべて解いて洗い、新たな服に仕上げて着るのである。そうであるところから、糊付けして新しい服地のように折り目を真っ直ぐにして、艶が出るように手入れする砧打ちが発達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このように家族の衣服の手入れと針仕事の腕前は、その家の主婦の能力を表現することとなり、主婦は一生懸命に家族の衣服をきれいに洗って、新しく染めて、体型に合わせて縫ったり、季節の変化に調和するように再構成したのである。

 

 〈閨閤叢書〉にも搗砧法といって、服地の種類や色によって砧打ちの方法を仔細に説明している。これによれば(訳注―以下の閨閤叢書の1節は漢文を韓国語訳したもののようだが、意味がよく分からない部分がある。)「絹織物にはテワム糊をつけるが、特に藍色にはこの糊をつけるだけで艶が出る。真紅色はテワム糊と膠糊を混ぜてつけた後、足踏みして、水気がほとんど乾いて膨らむようになってから、綾巻に巻いて叩く。木綿と麻は、紅花を浸けた濃黄色の水を少し入れて、五味子の水に糊を混ぜ溶いて使わないと、青い色が出ない。この時の糊は、あまり強くきかさ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紫朱色は糊を薄く溶いてつけた後、団扇を扇いで少し乾かして、力いっぱい踏んで綾巻に巻き、押していって足踏みして叩く。紫色はセント蘭を摩り下ろしてその汁をつけて叩き、亜青色は膠糊をつける。白色の明紬は鶏卵の白身をでんぷん糊に混ぜて使う。木綿にはそば粉を混ぜてつければ、糊が洗面でも柔らかくて艶が出て、麻は滑石やでんぷんをつけて叩けば艶が出る。」とあった。

 

 砧の方法は、糊気が乾く前に、歪んだ布目を真っ直ぐに広げてから畳んで踏み、綾巻に巻いて打つか、砧石の上に置いて打ってから綾巻に巻いて砧打ちした。この時に使う道具としては、硬い木で作られた砧槌、長方形で表面が滑らかな砧石、綾巻とこれを固定する枠、服地を包む風呂敷と紐である。

 砧打ちするものは、主に袷や綿入れ、寝具類であり、晩秋や冬の夜遅く、二人が四本の横槌で音律に合わせて服地を仕上げる砧打ちの音は、わが国の風俗の一面をなしていた。

 しかし合成繊維が発達し、服地の後処理と加工法が発達したことにより、砧の音が消えて、砧打ちした服地の美しさも消えるようになっていった。

 

〈参考文献〉

 閨閤叢書、韓国民俗文化大百科事典(韓国精神文化研究院、1991)、斗山世界大百科事典(斗山東亜、1996)、朝鮮時代の人たちはどのように暮らしたのか(韓国歴史研究会、青年社、1996)、老年層女性の衣生活に関する研究―大邱市を中心に(金イルブン、啓明大学校大学院 修士論文、1884)、わが国の衣生活の衛生学的考察―着衣量と皮下脂肪の厚さとの関係を中心に(鄭ウンソン、ソウル大学校 大学院 修士論文、1982)、金ヨルギュ 韓国女性論―韓国女性 彼女らは誰なのか―(金ヨルギュ、韓国学術情報、2001

 

〈類似・関連用語〉

砧石、砧台、搗砧、砧打ち等。

 

原典

  http://72.14.235.104/search?q=cache:vjc2GfyWYNsJ:museum.kyonggi.ac.kr/sch/full.cgi%3Fv_kw_str%3D%26v_db%3D1%26v_doc_no%3D00000228%26opt_s%3D1+%EB%8B%A4%EB%93%AC%EC%9D%B4+%EA%B2%BD%EA%B8%B0%EB%8C%80&hl=ja&ct=clnk&cd=1&gl=jp

 

C   砧について韓国人たちがどのような感じや思いを持っているのか、参考になるものがありました。翻訳文は薄赤で表示します。

えていく名物(사라져간 명물

 砧の音―人口繊維の流行、クリーニング屋の洗濯・アイロン掛けの代行…伝説の中へ

 

 「トントン叩く砧の音/その砧を聞き終わっても/この私の耳にしっかり残る/トントン叩く砧の音/コーコッと鳥が鳴き渡り/わが家の醤油をみな溶かす」

 これは巨済地域に伝わる砧打ちの歌で、このような歌が歌われるぐらいにわが国では砧打ちが生活の一部分を占めていた。砧の音は、我々の生活から生じた音の中で最も風流と風雅に秀でた音であった。特に夜遅く聞こえてくる風情ある砧の音は、多くの詩人と墨客たちの筆墨を引き寄せ、孤独な作曲家の楽想を浮かび上がらせ、また流行歌の歌詞を誕生させることもあった。

 

 特に秋の夜、遠くから聞こえてきた砧の音は、故郷を離れたさすらい人が、幼い時の祖母と母の姿を思い浮かべて後悔の涙を流すこともあった。漢字としては「搗砧」とも書く砧打ちは、服や布団カバーを砧石の上に載せておいて叩く作業であった。砧打ちは中国でも盛行したことが知られていて、閨閣叢書は「真紅のものの砧打ちは、紫蘭(蘭草科の多年草)に膠を混ぜて染み込ませ、木綿と麻は糊を強く浸けねばならず、空色のものは紫蘭で砧打ちし、どんな糊も染み込まないようにして、野青(黒色を帯びた青い光)のものは膠糊を染み込ませる」と記録されており、布地の種類や色によって違う砧打ちの方法を仔細に説明している。

 

 人の衣服を自然繊維質に依存した時代、服や布団カバーは、洗濯後に糊を浸けて少し干し、糊気が乾く前に二人が向かい合って座って両手で引っ張ってねじった部分を広げ、足で軽く踏んだ後、横槌で何回も叩き、皺をとる砧打ちが必須であった。主に秋遅くから冬の初めの時期に夜更けまで行なったもので、わが国の風俗の一面を成すものと言えた。砧石は緩やかな曲線を描く長方形で、上面は丁寧に手入れされ、両側面の下には手を入れて持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溝が掘られており、横槌は樺などの硬い木を削って作られた。砧打ちは女たちの役目として一人ですることもあったが、しかし大部分は二人が向かい合って座り、両手に横槌を持って、交互に叩いた。

 

時には助け合いで隣家の人と協力し、時には祖母や母、あるいは姉と母が二人で行なう砧打ちは、隣同士の愛を育み、嫁姑間の葛藤も解決していった。義母に仕え、子供の面倒をみて、農作業や機織、夕飯の支度、後片付けも夜中のうちにすまして、家族が眠る真夜中に、わが家の母は砧打ちを続けた。横で叩く砧の音には我関せずと鼾をかき、犬の遠吠えには目を覚ます祖父がいて、一眠りして目を覚ました子供が乳をくわえてようやく寝入った時、母はこっそり抜け出してまた再び砧打ちを続けるのだが、その音は何の妨げもない生活の音であった。

 

コツコツ、時にはトントンと野暮ったいながらも軽快な砧の音は、どんな楽器でも真似することのできない一つの自然音として、我々にはいつ聞いても暖かく情のあるものだった。特に晩遅く周囲から聞こえてくる砧の音は、幼い時に祖母や母がすぐ横で寝転がりながら胸をトントンと叩いて「ねんねんころりよ、うちの子供よ、子供よ、よく寝るよ。子供が寝る時はワンワン犬さん吠えないで、コッコ鶏さん鳴かないで。ねんねんころりよ、うちの子供よ、子供よ、よく寝るよ。」と歌ってくれた、その子守唄の代わりとなる心安らかとなる音であった。また成年になって聞いた砧の音は、時には興をそそることもあり、時には思索の時間と幼い頃の郷愁を抱かしめることもあって、特に冬を準備した秋の夜の砧打ちは、毎年の端境期、あまりの貧乏の暮らしで苦労して来た母への懐かしさで、いつまでも胸を痛めるのであった。

 

しかし合成繊維の発達とともに衣服の後処理と加工法の発達によってナイロンなど人工繊維の流行、アイロン、クリーニング屋が衣服の洗濯やアイロン掛けまで代行…70年代を境に砧打ちは消え、砧打ちした衣服の美しさ、そして暖かく情のあった砧の音さえ、伝説のなかに埋もれていっている。

 

原典

http://209.85.175.104/search?q=cache:MDZ8Cil6ElMJ:user.chollian.net/~sun6909/fade/fade1-23.html+%EB%8B%A4%EB%93%AC%EC%9D%B4%E3%80%80%EC%86%8C%EB%A6%AC+%EB%AA%85%EB%AC%BC&hl=ja&ct=clnk&cd=1&gl=jp

사라져간 명물 

  다듬이 소리 - 인조섬유 유행, 세탁소 세탁·다림질 대행전설 속으로

또닥 또닥 다듬이소리/ 그 다듬이 듣고 나나/ 요내 귀가 짱짱하네/ 또닥 또닥 다듬이소리/ 골골마다 울려 퍼져/ 우리님 간장을 다 녹이네」이는 거제지역에 전해지는 다듬이질 노래로, 이같은 노래가 불리워질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다듬이질이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했었다. 다듬이 소리는 우리의 생활에서 생겨나던 소리 중 가장 멋과 운치가 넘치는 소리였다. 특히 깊은 밤, 정겹게 들려오던 다듬이 소리는 많은 시인들과 묵객(墨客)들의 필묵(筆墨)을 끌어 당기게 했고 고독한 작곡가의 악상(樂想)을 떠 올리게 했으며 또한 유행가의 가사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가을밤 아스럼이 들려오던 다듬이 소리는 고향을 등진 나그네의 어린시절,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을 떠 올려 회심(悔心)의 눈물을 흘리게도 했다. 한자어로는 도침이라고도 하는 다듬이질은 바느질 한 옷이나 이불호청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두드리는 작업이었다. 다듬이질은 중국에서도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규합총서(閨閤叢書)는 「진홍 다듬기는 대왐풀(난초과의 다년초)에 아교를 섞어 먹이고 무명과 모시는 풀을 매우 세게 말아야 하며 옥색은 대왐풀로 다듬되 아무 풀도 먹이지 말고 야청(:검은 빛을 띤 푸른 빛)은 아교풀을 먹인다」고 기록돼 옷감의 종류나 색에 따른 다듬이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의 옷감을 자연섬유질(自然纖維質)에 의존하던 시절, 옷이나 이불호청은 세탁 후 풀을 먹여 약간 말리고 풀기가 마르기 전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양손으로 당겨서 비틀린 부분을 바로 펴고 또 발로 밟아 다독거린 다음 방망이로 두들겨 주름을 펴는 다듬이질이 필수적으로, 주로 늦가을과 겨울철에 밤늦게까지 행해지며 우리 풍속(風俗)의 일면을 이루기도 했다. 다듬잇돌은 완만한 곡선을 이룬 장방형으로 윗면은 바드럽게 손질했고 양쪽 밑으로는 손을 넣어 들수 있도록 홈을 팠으며 방망이는 박달나무 등 단단한 나무를 깍아 만들었다. 다듬이질은 여자들의 몫으로 혼자서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두사람이 마주앉아 양손에 방망이를 잡고 번갈아 가며 두드렸다.

때로는 품앗이로 이웃과 어울려 하기도 했고 때론 할머니나 어머님, 그리고 누나와 어머님이 함께 하던 다듬이질은 이웃간의 사랑을 꽃피우고 고부(姑婦)간의 갈등도 녹여갔다. 시부모님 섬기기, 자식들 뒷바라지, 농사랑 길쌈에 저녁밥상 설거지도 밤중인데 식구들이 잠든 야삼경(夜三更), 우리네 어머니는 다듬이질을 계속했다. 옆에서 두들기는 다듬이소리에는 상관없이 코를 골면서도 먼데서 개짖는 소리에는 잠을 깨시던 우리의 할아버지, 한잠을 자고 깬 아기가 젓을 물고 잠들 때, 어머니는 살며시 빠져나가 또다시 다듬이질을 계속했지만 그 소리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 우리의 생활소리였다.

또닥, 또닥, 때로는 토다닥, 토다닥, 투박하면서도 경쾌하던 다듬이소리는 그 어떠한 악기로도 흉내낼수 없는 하나의 자연음으로 우리에겐 언제나 포근하고도 정겨웠다. 특히 늦은 밤, 우리주변에서 들려오던 다듬이소리는 우리의 어린 시절, 할머니 어머니가 곁에 누워 가슴을 도닥거리며 「자장자장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잘도잔다. 우리아기 잠잘 때는 멍멍개야 짖지 말고 꼬꼬 닭아 우지 마라. 자장자장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잘도 잔다」하고 불러주시던 그 자장가를 대신한 친숙한 소리였다. 또한 성년(成年)이되어 듣던 다듬이소리는 때론 흥을 돋구기도 했고, 때론 사색의 시간과 어린시절 향수를 안겨주기도 했으며 특히 겨울을 준비하던 가을밤 다듬이소리는 해마다 보릿고개, 찌들린 가난으로 힘겨운 삶을 사시다 가신, 어머님의 그리움을 못내 사무치게도 했다.

그러나 합성섬유의 발달과 함께 옷감의 후처리와 가공법의 발달에 따라 나일론 등 인조섬유의 유행, 다리미, 세탁소가 옷감의 세탁이나 다림질까지 대행, 지난 70년대를 고비로 다듬질은 사라지고 다듬이질 한 옷감의 아름다움, 그리고 포근하고 정겹던 우리의 다듬이소리마저 전설(傳說)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D    砧打ちの音は、下記のウェブサイトで聞くことができます。ただし砧石の上に布地を折り畳んで置くタイプ(U型)の砧の音で、綾巻に巻いて打つタイプ(T型)の砧の音でないのが残念です。後者の音を聞くことは、困難なようです。

http://mixsh.com/tag/%EB%8B%A4%EB%93%AC%EC%9D%B4

http://soon1991.tistory.com/entry/%EC%98%A4%EC%9C%84%EC%9E%A5-%EC%9C%A4%EC%B6%98%EC%98%81%EC%9D%98-%EC%A7%91

 

 

【関連論考】

「砧」講演           http://www.asahi-net.or.jp/~fv2t-tjmt/daihyakurokudai

「砧」講演(続)        http://www.asahi-net.or.jp/~fv2t-tjmt/daihyakunanadai

「砧(きぬた)」         http://www.asahi-net.or.jp/~fv2t-tjmt/dairokujuurokudai

「朝鮮の砧」          http://www.asahi-net.or.jp/~fv2t-tjmt/daikyuujuudai

「誤りの多い“砧”の解説」   http://www.asahi-net.or.jp/~fv2t-tjmt/daikyuujuusandai

「砧」に触れた論文批評     http://www.asahi-net.or.jp/~fv2t-tjmt/daihyakuhachidai

角川『平安時代史事典』にある盗用事例  http://tsujimoto.asablo.jp/blog/2007/04/07/1377485

「砧」と渡来人とは無関係        http://tsujimoto.asablo.jp/blog/2007/04/14/1403192

北朝鮮の砧               http://tsujimoto.asablo.jp/blog/2007/12/22/2523671

砧という道具              http://tsujimoto.asablo.jp/blog/2008/01/05/254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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