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漢城、漢陽そして京城

 

 「京城」が差別語ではないことは、拙論で再三論じてきました。

第24題 「差別語」考 第62題 「京城」は差別語ではない

第79題 全外教の歴史誤解と怠慢

http://tsujimoto.asablo.jp/blog/2007/09/29/1827082

http://tsujimoto.asablo.jp/blog/2007/10/20/1861618

しかしそれでも、これが差別語であるから使ってはならないとする言説は後を絶ちません。

 今回は、韓国では「京城」がどのように論じられているかを見るために、朝鮮日報が出している月刊誌『月刊朝鮮』の理事の方の小論がありましたので、それを翻訳して紹介します。

 

 

「漢城、漢陽そして京城」

趙南俊 『月間朝鮮』 理事

 

 何日か前に、ある日刊新聞がソウルを「京城」と表記することは「日帝の残滓」だと批判したものを読んだ。このような批判が正しいのか間違いなのかを見きわめる前に「ソウル」についての名称を歴史的に考察してみる必要がある。

 統一新羅は全国を九つの州に分けて、ソウル地方を「漢山州」と称した。景徳王の時にソウル付近を「漢陽郡」という呼び方をするものとして、初めて「漢陽」という地名が登場する。高麗朝に入って「楊州」と呼ばれたソウルは、文宗22年(1068年)「南京」に昇格して遷都の対象として選ばれるまでになった。忠烈王の時代である1308年、「漢陽府」という名前を得たソウルは、朝鮮が開国して首都となった1394年「漢城府」と呼ばれるようになる。この名前は1910年、日本が朝鮮を強制的に併呑する時までの500余年間、ソウルの公式名称として使用された。

 1910101日、日帝は朝鮮総督府を開設してソウルの名前を漢城府から「京城府」に変える。解放後、「京城」は「ソウル」に変わり、1948815日に大韓民国が発足した際に公式的に首都として公布された。

 このような経過から、ソウルを「京城」と表記することは「日帝の残滓」という批判が一見妥当性があるように見える。しかし、日本が朝鮮を強制合併した後、「漢城」を格下げするために「京城」という名前を作ったという主張は、事実ではない。京城はすでに数百年前から我々の祖先たちが使用してきたソウルのもう一つの名前であるからである。

 朝鮮朝時代にソウルを意味する言葉として四種類の名称が使われた。漢城、漢陽、京城そしてソウルである。

 「漢城」はソウルの公式名称であった。漢城を管掌する官庁を「漢城府」といい、今のソウル市にあたる。その首長は「判尹」という。

 「漢陽」はソウルの通常名称であった。「お前はどこへ行くのか」と尋ねると「俺は漢陽に行くんだよ」。このような時に使う言葉である。

 「ソウル」は漢陽とその付近を称する非公式的な呼称であった。「このごろソウル近くで泥棒がはびこっているようだが‥‥」このように口語で使われた。

 それでは京城はいつ使われたのか。「京城」は口語として使われる「ソウル」の意味なのである。「ソウル」は漢字で表記できないので、漢字で書く時にだけ使用する文語であった。

 京城という言葉は1617世紀の史料にも出てくるが、旧韓末の1898年(光武2年)に尹致昊らが創刊した「京城新聞」(後に「大韓皇城新聞」と改称)でも見ることができる。

 

『月刊朝鮮』記者掲示板 2005513日付け

翻訳 辻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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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城, 漢陽 그리고 京城
 
趙南俊 월간조선 이사
 
며칠 전, 모 일간신문이 서울을 '京城(경성)'이라고 표기한 것은 '日帝(일제)의 잔재'라고 비판한 것을 읽었다. 이러한 비판의 잘 잘못을 가리기 전에 '서울'에 대한 명칭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며 서울 지방을 漢山州(한산주)라 칭했다. 경덕왕때는 서울 부근을 漢陽郡(한양군)이라고 부름으로써 처음으로 漢陽(한양)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고려조 들어와 한때 楊州(양주)로 불리던 서울은 문종22(1068) 南京(남경)으로 승격되며 遷都(천도)의 대상지로 꼽히기까지 한다. 충렬왕때인 1308 漢陽府(한양부)라는 이름을 얻은 서울은 조선이 개국하여 수도로 자리잡힌 1394년 漢城府(한성부)로 불리게 된다. 이 이름은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탄할 때까지 500여년간 서울의 공식명칭으로 사용됐다.
1910
101일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개설하고 서울의 이름을 漢城府(한성부)에서 京城府(경성부)로 바꾼다. 광복후 京城(경성)은 서울로 바뀌며, 1948 815일 대한민국이 출범하며 공식적인 대한민국의 수도로 공포된다.  
그러니까 서울을 '京城'이라고 표기한 것은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이 일견 타당성이 있어보인다하지만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한 후, 漢城(한성)을 격하하기 위해 京城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하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京城은 이미 수백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사용해온 서울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조선조시대에 서울을 뜻하는 말로 네 가지 명칭이 쓰였다漢城(한성), 漢陽(한양京城(경성), 그리고 서울이다.
'
漢城'은 서울의 공식명칭이었다漢城을 관장하는 관청은 한성부지금의 서울시다. 그 首長(수장) 판윤.
'
漢陽'은 서울의 통상명칭이었다. "자네 어디 가나" 하고 물으면 "나 한양 가네" 이렇 때 쓰인 말이다.
'
서울'은 漢陽과 그 부근을 일컫는 비공식적인 호칭이었다. "요즘 서울 인근에 도둑들이 들끓는다고 하네..." 그리고 口語로만 쓰였다.
그러면 京城은 언제 쓰였을까. 京城은 口語(구어)로 쓰인 '서을'의 표의어다. 서울을 한자로 표기할 수 없으니까, 서울을 한자로 쓸 때만 사용한 文語였다
京城이라는 말은 16~7세기의 史籍(사적)에도 나오지만구한말인 1898(광무2)에 尹致昊(윤치호) 등이 창간한 '경성신문(후에 대한황성신문으로 개명)'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http://monthly.chosun.com/reporter/writerboardread.asp?idx=804&cPage=1&wid=n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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