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ζ115‘θ@‹m(다듬이)

이데올로기의 역사에 대한 의문

e지금 일본에서는 조선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민족수난과 이에 대한 투쟁의 역사라는 이데올로기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서 평소의 일상생활에 주목하는 사람은 적다는 인상을 갖는다. 다듬이는 이전에는 재일조선인의 생황에서는 아주 흔이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지금 그 것이 버리게 되어서 기억도 사라져 가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관점부터 보면 다듬이 같은 사소하고 지엽말절적, 참 시시한 것을 왜 연구하느냐는 질정의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그러나 생활이라는 구체성에서 동떨어진 재일조선인상을 그리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저는 큰 위화감을 느낀다. e

 

이상은 졸고 e다듬이 재일한국인여성의 민속자료의 소개와 일한의 비교f ( e역사와 고우베 (歷Žj와 _戶)f 199,200,203)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논문은 재일한국인 할머니가 시집 오신 이후 오래도록 사용해왔던 다듬이 도구를 본인한테서 받은 것을 계기로 조사 연구를 거듭해서 쓴 것입니다. 학술논문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했지만 딱딱하지 않는 에세이같은 문장이었기 때문에 인정됐다고 봅니다.

 

다듬이라는 뭘까?

 다듬이는 더러움을 빼는 빨래를 한 후 마무리 공정이고 주름을 펴서 광을 내기 위하여 옷감을 두드리는 도구, 혹은 그 행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말을 하면 다리미질에 해당됩니다. 다듬이는 빨래와 일련의 일이지만 공정도 목적도 도구도 용어도 다른 것입니다. 이 차이는 일본도 조선도 같은 것입니다.

@고고학에서는 짚을 두드릴 때 사용하는 망치같은 방망이를 e다듬이f 라고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와타나베마코토(“n粐½)e방망이의 고고,민구학적연구f (1)가 그 잘못을 지적해 이후 e다듬이f가 아니라 e요코쯔치(ϊξ’Ζ)f 라고 하게 됩니다. 다만 이런 오해는 이곳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아직 널리 퍼져 있는 갓 같습니다.

 

조선의 빨래와 다듬이

 전쟁전(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문헌에 다음처럼 해설이 있었습니다.

 

e조선의 천지에 울리는 다듬이 소리는 춘하추동 끊이없이 어디에선가 들린다. 낮 동안 빨래하기에 바쁘던 여자는 날이 저물면 그 빨래감을 나무나 돌의 대 위에 두고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두드리고 있다. 가을 밤이 깊어가서 멀리 뿐 아니라 가까이에도 두드리는 다듬이 소리는 왠지 나그네에게 사물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e (2)

 

조선의 빨래는 방망이로 두드리는 빨래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냇가에서 이 빨래 방식으로 더러움을 뺀 다음에 빨래감을 가지고 집으로 가서 다듬이를 하여 마무리한 것이다. 빨래는 옥외, 다듬이는 옥내에서의 작업입니다. 또 빨래와 다듬이는 같이 옷감을 두드리는 일인데 빨래방망이는 하고이타(‰HŽq”Β)의 모양이고 다듬이방망이는 야구 배트 모양입니다. 그리고 빨래방망이는 한 손에 들고 두드리는데 다듬이방망이는 두 자루를 양 손에 각각 들고 번갈아 두드립니다. 또 조선어로 센타구(τ‘σ)e빨래f, 기누타(‹m)e다듬이f입니다.

 

두드리면서 빨래하는 방식을 e다듬이f라고 하는 오해

 조선의 두드리는 빨래 방식을 e다듬이f라고 하는 잘못이 눈에 자주 띕니다. 예를 들어 50여년전 올 로맨스 투쟁의 계기로 된 소설 e특수부락f(1951)(3)은 재일조선인을 주제로 한 것인에 그 가운데 e다듬이를 두드리며 빨래하는 여자f란 표현이 나옵니다. 다듬이는 일본사회에서는 메이지(–ΎŽ‘)시대쯤에 쇠퇴하여 세상에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4). 저자가 일본인이기때문에 다듬이라는 것을 잘 몰라서 저지른 잘못이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사회에서는 1960년대까지 다듬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971 년 아쿠타가와쇼(ŠHμά) 수상 작품에 이회성(—›‰ψ¬) e다듬이를 하는 여자f 가 있는데 그 중에서 다음처럼 다듬이질하는 묘사가 있습니다.

 

e집에서 빨래했을 때 어머니는 마른 옷감을 겹쳐서 툭툭 다듬이를 했던 것이다. **겹친 의복에 보를 덮고 느긋하게 다듬이를 하는 것이다. 날마다 보는 광경이었다.f(5)

 

 이것은 다듬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재일조선사람인 작자가 생활 속에서 실제로 봐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20년쯤이 지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니타났습니다.

 

e한국의 민족의상을 말할 때 꼭 다듬이가 등장한다. ***빨래할 때마다 실을 풀어서 빨래해 다듬이를 한다. 즉 더러움을 빼는 것과 동시에 섬유를 부드럽게 한다. 그리고 풀을 먹이고 더욱 다듬이를 하고 다리미를 해서 옷감을 곱게 편다. e(6)

 

이 문장에서는 다듬이를 두 차레나 하는 것 같이 적혀 있지만 첫번째는 두드리며서 하는 빨래지 다듬이가 아닙니다. 다듬이는 재일조선인사회에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196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1970년대까지 볼 수 있었지만(7) 그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저자는 아마 다듬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이러한 잘못이 생긴 것이 아닐까라고 짐작합니다.

 

 최근의 예를 들면 오사카인권박물관(‘εγlžά”Ž•¨ŠΩ) 에서 재일조선인이 사용했던 다듬잇돌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설명문은 e빨래 도구f 라고 합니다. 게다가 방망이는 한 자루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e다듬이 도구f 라고 해서 방망이가 두 자루 있어야 하는 것입나다.

 

 빨래와 다듬이를 혼동하는 오해는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체험하거나 본 사람이 없어지면서 잘못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일찌감치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야기 미치오(‹{ι“Ή—Y)의 가라기누타(“‚‹m)

미야기 미치오는 메이지(–ΎŽ‘)40(1907)부터 다이쇼(‘吳)6(1917)까지 조선에서 살고 일본 음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e가라기누타(“‚‹m)f는 그 시절에 작곡한 곡입니다. 이것은 거문고(β΅)와 샤미센(ŽO–‘ό)에 의한 사중주곡인데 서양 음악가들에게서 호평과 공감을 얻었습니다. 맹목인 그는 조선 제일의 다이켄교(‘εžϋZ)라는 지위에 올랐습니다. (8)

그런데 다듬이는 상술처럼 이 시기의 일본에서는 사라졌지만 조선에서는 성했습니다. 그는 조선 체재중에 조선여성들이 다듬이를 하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일본에서는 벌써 들리지 않게 됐던 다듬이 소리를 생각하면서 명곡 e가라기누타(“‚‹m)f를 제작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의 전기(9)에는 그렇게 적히지 않아서 내 일방적인 상상입니다.

미야기(‹{ι)가 조선에서 활약했다고 하는 것은 의외로 알려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

1: `고고학잡지(lŒΓ›{袎)70권 제3f (소화60 3)

2: 조선총독부철도국 e반도의 근영(”Ό“‡의 ‹ί‰e)f (19364).

3: 이 소설은 차별소설이라고 해서 전문을 읽는 것은 오랫동안 하지 못했지만 근년 e부락해방사(•”—Ž‰π•ϊŽj)*후쿠오카80f(후쿠오카 •”—ŽŽj硏‹†˜π)에 게재되었다. 또 쿄토(‹ž“s) 부락사 자료집에서도 게재되었다고 한다.

4: 일본에서는 빨래한 후의 마무리는 아라이하리(τ’£-신시하리와 이타바리)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어 다듬이의 풍습이 사라졌다. 다만 제아미(’ˆ’œ\)의 명곡 e다듬이(‹m)f 에서는 능악(”\žΩ)의 무대에서 옛날 다듬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5: 이회성(李‰ψ¬) e또 다시의 길, 다듬이를 하는 여자f (고단샤문예문고 u’kŽΠ •ΆεY•ΆŒΙ)209,224.

6: 김양기(‹ΰ兩Šξ)감수 e읽고 여행가는 세계의 역사와 문화 -한국f (신쵸샤 V’ͺŽΠ 1993)190.

7: 이토아비토(ˆΙ“‘˜±l) e더 알고 싶은 한국1f (고분도 O•Ά“° 1997) 50쪽에서 e70년대까지는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도 할머니가 다듬이를 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e 라고 한다.

8: e간사이(萐Ό)레코드120 24 미야기미치오(‹{ι“Ή—Y)f  ( e고우베(_戶)신문f 1997 1224)

9: 요시카와히데후미(‹gμ‰pŽj) e이 사람이다 ‹{ι“Ή—Yf (신쵸샤 V’ͺŽΠ 소화37 6)

 

(추기)

 오사카인권박물관(‘εγlžά”Ž•¨ŠΩ)은 최근 리뉴얼되어 다드미 도구가 전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민족학박물관의 한국 코너에서 전시되어 있던 다듬이 도구도 지금은 제외되었습니다. 전자는 옷감을 접고 다듬잇돌 워에 두고 두드리는 타입이고 후자는 홍두깨라는 동근 막대기에 옷감을 감아 두드리는 타입입니다. 두 가지 타입의 다듬이었느데 지금은 모두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선인이 생활 속에서 사용된 다듬이의 실물은 일반인은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일본의 다듬이가 소멸되어서 지금 어느 자료관에서도 수장하지 않는 것과 같이 조선의 다듬이도 사라져가는 갈까라고 걱정됩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어구설명)

다듬이 ;         빨래한 후의 마무리이어서 옷감을 두드려 주름을 펴고 광을 내는 도구. 혹은 그 행위.

홍두깨 ;           옷감을 다듬이 할 때 그 옥감을 감는 동근 막대기.

홍두깨 다듬이 ;    옷감을 감는 홍두깨를 두드리는 다듬이. ‡T타입,

넓 다듬이 ;        홍두깨를 사요하지 않고 옷감을 접고 다듬잇돌 위에 두어 두드리는 타입. ‡U타입.

다듬이 방망이 ;  다듬이를 할때 용하는 방망이. 두 자루를 양손으로 각각 들고 두드린다.

다듬잇돌 ;      @다듬이를 할때 사용하는 대. ‡T타입에는 홍두깨를 고정하는 대. ‡U타입에는 옷감을 접어 두는 대.

빨래 ;             집안일로서 하는 세탁.

빨래 방망이 ;      두드리는 빨래 방식으로 한는 방망이. 한 손으로 들고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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